
런던 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미술관들이 있다. 보통 인상주의 거장 고흐와 모네의 작품이 있는 내셔널갤러리, 앤디워홀과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테이트모던을 쉽게 떠올릴 것이다. 하루에도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일정도로 큰 규모의 갤러리들 속에서도 본연의 색을 잃지 않고 우두커니 자리 잡고 있는 갤러리가 런던에 있다. 트라팔가광장에서 11번 버스를 타고 30분가량 창밖을 구경하다 보면 바로 그 주인공인 사치갤러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런던 첼시 지역의 듀크 오브 요크 광장에 위치한 사치갤러리는 런던의 중심부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기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듀크 오브 요크 광장에 들어서면 길 한켠에 푸른 나무 길이 관람객을 반기고 있다. 갤러리 하면 떠올리는 차가운 시멘트 벽의 외형과는 달리 갤러리 앞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과 갤러리 옆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사치갤러리와 조화를 이루며 복잡한 런던 속에서 쉽게 찾기 어려운 여유로움을 보여주고 있다.

사치갤러리는 초기에는 런던 북서부의 세인트 존스 우드에서 개관을, 2003년에는 템스 강변 사우스뱅크에 위치한 옛 런던 시청으로 이전하며 관람객들에 모습을 맞춰나가기 시작했다. 5년이 지난 후 2008년이 돼서야 현재 위치인 듀크 오브 요크 광장으로 최종 이전하여 재개관했다. 갤러리의 위치를 옮기는 과정을 통해 보다 더 다양한 관람객에 다가가고 빠르게 변화하는 런던 예술계 속에서 입지를 다지는 노력을 해왔다.
갤러리가 최종적으로 자리 잡은 첼시 지역은 무엇보다 런던에서 유서 깊은 공간이다. 과거부터 예술가, 문인들이 모여들던 곳임과 동시에 런던 패션의 중심지인 킹스 로드와도 연결된다. 미술이라고 하면 전공자 혹은 특정 소수만을 위한 예술이라는 사회적 분위기를 깨고 사람들 속에 함께하며 사치갤러리만의 고유의 자유롭고 활기찬 분위기를 보여준다.

사치갤러리의 시작은 찰스 사치의 손에서부터였다. 1985년, 광고업계 거물이자 세계적인 미술품 컬렉터로 손꼽히는 찰스 사치의 개인갤러리로 문을 열었다. 갤러리를 열기 전 광고회사 ‘사치 앤 사치’로 많은 부를 쌓았던 찰스 사치는 뛰어난 안목으로 젊고 도전적인 예술가들의 작품을 수집하며 현대 미술계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특히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 등장한 YBA(Young British Artists) 즉 젊은 영국작가들의 작품을 발굴하고 후원하기 시작했다.
그 신예작가 중 힘차게 떠오른 작가 중 한 명이 바로 데미안 허스트다. 사치갤러리는 ‘박제상어’ 등 데미안 허스트의 대표적인 작품을 선보이며 갤러리의 명성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이후 수많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며 다른 갤러리와는 달리 젊은 작가, 저평가된 중견작가들의 작품을 구매하고 마케팅하며 대중적인 현대미술이라는 사치갤러리만의 입지를 다져가기 시작했다.

사치갤러리는 현대미술을 일상적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큰 평가를 받고 있다. 당시 일부 사람들은 아직 유명하지도 않은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쓸모없는 짓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치갤러리는 아직 떠오르지 못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며 새로운 관객을 유입하고 누구나 접근 가능한 예술 공간으로 만들어냈다.
감상만을 위한 예술이 아닌, 예술을 일상으로 끌어낸 곳이 바로 이 사치갤러리다. 무더운 여름날, 런던을 여행하다 일상속 예술을 즐기러 사치갤러리에 들러보는 것은 어떨까. 오늘도 사치갤러리는 도심속에서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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