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가을, 10월 셋째 주의 파리는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열기로 가득 채워졌다. 아트바젤이 파리에 도착하며 전 세계에서 미술 애호가들이 파리로 모였다. 지난 6월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아트바젤 방문의 여운이 아직 남아있는 때, 아트바젤 파리의 현장에도 찾아가 봤다.
예술의 도시로 잘 알려진 파리. 파리에 여행을 오는 사람들은 오르세 미술관, 퐁피두 센터 등 유명 미술관에 꼭 들르고 싶어 한다. 그런 파리에서는 매년 가을 FIAC이라는 대표적인 아트 페어를 열어왔다. 영국의 프리즈 런던, 스위스의 아트 바젤과 함께 3대 아트 페어로 꼽히곤 했다. 2022년 아트 바젤을 운영하는 MCH 그룹이 FIAC을 인수하면서 ‘파리+ 파 아트 바젤(Paris+ par Art Basel)’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올해 ‘아트바젤 파리(Art Basel Paris)’로 그 이름을 바꾸고 그랑 팔레로 장소를 옮겨오면서 더 진화했다. 2024 아트바젤 파리는 그랑 팔레 뿐 아니라 쁘띠 팔레, 팔레 루아얄, 에콜 데 보자르, 이에나 궁 등 10곳의 파리 명소에서 무료 야외 전시도 열면서 그야말로 파리 전체를 예술 축제의 장으로 만들었다.
아트바젤 파리는 18일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개방되기에 앞서 16일 VIP 전시로 먼저 공개됐다. VIP 전시가 열리자마자 대작들이 판매 완료되며 미술계의 이목이 쏠렸다. 비슷한 시기 런던에서 열린 프리즈 런던을 건너뛰고 아트바젤 파리에 참가한 화랑들도 적지 않았다. 대중적인 작품을 위주로 하는 프리즈 런던보다도 참신한 작품과 굵직한 대작을 선보여 예술가들의 발길을 끌었다. 어떤 사람들은 아트바젤 파리가 프리즈 런던을 뛰어넘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수백 년 동안 라이벌 관계에 있으면서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유럽의 대표 도시라는 이름을 놓고 다툰 파리와 런던이고 그중에서도 미술 분야는 서로 양보할 수 없이 치열했다. 현대 미술 하면 미국 다음이 런던이라고 할 정도로 런던이 상대적으로 더 유명했지만, 아트바젤 파리를 통해 파리가 현대미술에서의 입지도 굳히기에 들어간 것이다.
방문하기 전부터 소문이 자자했던 아트바젤 파리, 그 현장으로 직접 가 봤다. 샹젤리제 지하철역에서 내려서 조금만 걸어가면 그랑 팔레에 다다른다. 파리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활약했던 종목 중 태권도와 펜싱 경기가 열렸던 바로 그곳이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건립돼 수많은 권위 있는 예술 행사를 열어온 곳이기도 하다. 2020년부터 보수공사를 진행해 파리 올림픽에서 그 문을 다시 열었고 아트바젤 파리가 다음으로 입성했다. 웅장하고 화려한 그랑팔레가 아트바젤 파리의 분위기를 한층 더 살려줬다. 전시장에 입장하자마자 보이는 화려한 작품들과 함께 유리 지붕을 통해 비춰오는 햇살이 아트바젤 파리에 잘 왔다고 반겨주는 듯했다.
42개국 195개 갤러리가 참여했다는데, 그 규모가 엄청났다. 쉴 새 없이 전시장을 돌아다녔다. 올해 아트바젤 파리의 키워드는 ‘초현실주의’였다. 1924년 프랑스 시인 앙드레 브르통이 ‘초현실주의 선언’을 주창한 100주년을 맞이해 기획됐다. 무의식의 세계를 표현한 초현실주의가 주제라니, 얼마나 재미있을지 기대감을 안고 작품들을 감상하기 시작했다. 레고로 만든 모나리자, 의자를 쌓아 만든 구조물 등 다양한 재료로 다양한 시도를 한 참신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각자의 매력을 가진 갤러리들을 이리저리 방문하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훌쩍 가 있었다.
중간중간 익숙한 그림체가 발길을 멈추기도 했다. 피카소, 칸딘스키, 호안 미로 등 거장들의 추상화 작품도 만나볼 수 있었다. 수많은 최신 작품 속에서도 거장들의 작품 앞은 더 붐볐다. 거장들의 작품은 언제 어디서 만나도 반갑다. 시간이 오래 지나도 사랑받는 이유가 있다.
2층에는 좀 더 특별한 전시들이 펼쳐져 있었다. Premise 섹션에서는 1900년 이전의 고전 작품들을 현대 미술과의 대화 속에 배치해 시간과 역사를 넘나드는 작품들을 보여주었고, Emergence 섹션에서는 신진 작가들의 갤러리를 집중해서 보여줬다.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재활용품, 램프 등 다양한 소재를 활용한 신진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자신의 세계를 보여주려는 열정이 한가득 느껴졌다.
2층에서 1층의 전시장을 내려다보니 아트 바젤 파리의 현장이 한눈에 보였다. 갤러리들 사이로 사람들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각 갤러리에서는 작품에 대한 설명 또는 토론이 이뤄지고 있었다. 예술에 대한 애정과 열정의 에너지가 단번에 전해졌다. 2층에서 내려다보니 아직 다 보지 못한 작품들이 눈에 띈다. 1층으로 다시 내려가 미리 봐뒀던 작품들을 따라가 본다. 위층에서 점찍어둔 작품을 보러 가던 중에도 눈길을 끄는 갤러리가 있으면 잠시 둘러보며 마지막까지 알차게 아트 바젤 파리를 만끽했다.
어느덧 해가 지고 남색으로 바뀐 하늘이 유리 천장 위로 보인다. 이내 폐장을 알리는 방송이 들려온다. 수많은 인파 속에 전시장을 나가는 중에도 아쉬움에 계속 뒤를 돌아보게 된다. 전시장을 나와 보이는 포스터에 적힌 메세지 “L art est identité(예술은 정체성이다)” 는 전시장에서 본 작품들을 곱씹게 만든다. 세계 각국의 예술가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만난 시간이었다. 다양한 정체성이 예술의 도시 파리에 모여 만들어낸 아트바젤 파리. 다음에는 또 어떤 정체성을 보여줄지 기대하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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