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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박물관의 밤 100% 즐기기 : 루이비통 파운데이션편

월간 안데르센 2024.6월호

by 안데르센 2024. 10. 5.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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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여행하면서, 유럽에 대한 선망보다는 우리나라가 살기 좋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물론 여행자로서 몇 주간을 여행하기에는 유럽이 낭만적인 곳으로 비춰질 수 있지만, 생활하면서 느낀 불편함은 열 손가락이 부족할 정도로 많았다. 다만 이번 같은 경우는 유럽에 사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매년 5월 셋째 주 주말,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유럽 박물관의 밤’이라는 행사를 연다. 2005년 프랑스에서 시작된 이 행사는 현재 유럽 전역의 박물관과 미술관이 저녁부터 자정까지 무료로 개방되며 다양한 프로그램과 이벤트를 제공한다. 

올해 유럽 박물관의 밤은 5월 18일이었다. 저녁 시간부터 무료 개방이라 그런지 늦은 시간까지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애초에 느즈막이 파리 시내에 도착해 저녁 9시가 다 돼서야 루이비통 파운데이션에 도착했지만 아직 관람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루이비통 파운데이션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였고, 가는 길목에 놀이공원도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줄지어 가는 모습을 보며, 단번에 여기 있는 모두가 같은 목적지를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생각보다 줄이 길었지만 입장은 수월하게 진행됐다. 루이비통 파운데이션은 루이비통 재단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현대 미술관이다. 전시도 전시이지만 건축물 그 자체로도 유명하다. LA의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과 체코의 댄싱 하우스 등으로 유명한 프랭크 게리가 만든 현대 기술의 집약체다. 12개의 돛을 현상화한 유리 패널들은, 1km 뒤에서 봐도 “나 프랭크 게리 작품이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 프랭크 게리의 건축물을 단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단번에 그의 스타일을 알아챌 수 있다.

 

 

루이비통 파운데이션에서 진행 중인 전시회는 총 2개, 형태와 색채를 주제로 한 엘스워스 켈리의 전시와 프랑스의 대표 화가 앙리 마티스에 관한 전시가 있었다. 엘스워스 켈리의 전시를 보며 든 생각은 주제를 참 잘 잡았다는 것. 말 그대로 형태와 색채에 집중한 작품들이었다. 사람과 사물을 표현하는 회화보다는 형식으로서 의미를 주겠다는 작가의 의도가 다분했다. 지난번 퐁피두 센터에서 본 몬드리안의 뉴욕시티라는 작품 생각이 절로 났는데, 점·선·면으로 끊임없는 감성을 만들어내는 몬드리안만의 느낌말이다. 알파벳과 한글 등 어디선가 따온 듯한 형태들과 원색의 색들, 이전의 회화들과 달리 작품의 해석, 작가의 의도를 사색하며 작품을 감상하기보다는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는 것도 하나의 매력 포인트였다.

켈리의 전시는 0층부터 시작하는데, 아직 1층으로 넘어가기에는 이르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유명한 작품도 아닌, 바로 이 공간에 있으니 말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기 전, 보이는 문 하나를 열고 가면 전시회에서 봤던 사람 수만큼의 사람들이 보인다.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거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건축물을 받치고 있는 비스듬한 기둥과 거울의 조화, 은은한 색의 조명까지 어우러져 어떻게 사진을 찍어도 흔히 말하는 ‘핫한 사진’이 됐다. 거기에 선선한 날씨와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은 감성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얕은 인공 개울은 유리 패널이 12개의 돛이라는 의미만 알면 자연스레 어떤 의미인지 상상이 된다. 바다를 떠다니는 한 척의 거대한 배, 우리는 그 배에 탑승한 승객이 아닐까. 문득 주위에 건축에 유능한 친구 한 명이 있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살짝 스친다. 허나 건축을 모르는 사람들이 봐도 멋있는 건 멋있는 법이다. 예술은 미를 위해 창조된 학문이 아닌가. 누가 봐도 멋있고, 아름다운 것. 그런 의미에서 프랭크 게리는 성공한 건축가이자 예술가였다. 

 

 

하이라이트가 끝났지만 전시는 끝나지 않았다. 프랑스의 대표 화가 중 한 명인 앙리 마티스의 작품이

 남아있다. 앙리 마티스의 작품도 작품이지만 그의 화실을 옮겨놓은 듯한 전시가 인상적이다. 화가의 아뜰리에를 잠시나마 엿볼 수 있는 일, 그림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그보다 가슴 떨리는 일이 있을까. 강렬하고 깊은 색채를 사용하는 마티스답게 그의 그림 곳곳에는 색을 향한 표현들이 숨어있다. 마티스의 대표작 ‘붉은 방’에 이어 ‘레드 스튜디오’를 보고 나니 붉은색이 머리에 강렬히 남았다. 고흐는 노란색, 마티스는 붉은색. 하나의 색을 대표하는 화가로 기억되는 것도 영예로운 일이다. 그는 나에게 붉은색 화가다. 

밤 10시가 돼서야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해가 저묾과 동시에 루이비통 파운데이션의 진가가 드러났다.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는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루이비통 파운데이션의 밤은 낮보다 아름다웠다. ‘유럽 박물관의 밤’, 루이비통 파운데이션의 진가를 알아보기에 딱 적절한 행사였다. 밤이 깊어가도록 건물의 빛은 꺼지지 않았다. 시간이 잠시 멈춰있기를, 건물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이 이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이대로 보내고 싶지 않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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