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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게세 미술관, 베르니니와 함께하는 신화 속으로의 초대

월간 안데르센 2024.6월호

by 안데르센 2024. 10. 5.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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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게세 미술관은 17세기 초에 추기경 시피오네 보르게세(Scipione Borghese)에 의해 설립되었다. 그는 카라바조와 베르니니 등 당대 최고하는 예술가들의 후원자로, 이 미술관의 탄생에 크게 기여했다. 보르게세 추기경은 자신의 별장에 예술 작품들을 수집하고 전시하기 시작했으며, 이 컬렉션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확대되었다.
      
보르게세 미술관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로, 아름다운 정원과 함께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건물 내부는 우아한 프레스코화와 장식물로 꾸며져 있으며, 방마다 다양한 주제와 스타일의 예술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보르게세 미술관은 사전 예약이 필수이다. 방문객 수를 제한하여 쾌적한 관람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미술관 주변의 보르게세 공원은 산책하기에 좋은 장소로, 미술관 관람 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이다.
     
오늘은 바로 조각가 지안 로렌조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의 작품들을 만난 순간이다. 그의 조각들은 단순한 예술 작품을 넘어선, 살아 숨 쉬는 인물들과의 만남이었다.

 

 

'프로세르피나의 납치'

 

보르게세 미술관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작품은 '프로세르피나의 납치'이다. 베르니니는 이 조각에서 인간의 감정과 신화 속 사건을 가장 극적으로 표현했고 단 하나의 조각으로 응축해 냈다. 대리석임에도 불구하고 프로세르피나의 고통과 두려움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프로세르피나의 얼굴에는 공포와 절망이 서려 있으며, 그녀의 몸은 하데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다. 하데스의 손가락이 그녀의 허벅지를 움켜잡고 있는 부분은, 대리석이 아닌 실제 피부를 만지고 있는 것 같은 생생함을 자아낸다. 이 손가락이 파고드는 듯한 모습은 베르니니의 천재적인 세부 표현 능력을 보여준다. 

하데스 표정 역시 이 작품의 중요한 요소이다. 그의 표정은 단호하면서도 절박하다. 눈에는 열망이 가득하며, 그 손길에는 프로세르피나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하데스의 근육과 자세는 그의 힘을 보여주며, 그가 신임을 증명하고 있다. 프로세르피나는 반항하고 있지만, 그녀의 몸은 하데스의 힘에 무력하다. 그녀의 눈은 두려움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녀의 입술은 공포에 질린 듯 벌어져 있다. 그녀의 손은 하데스를 밀쳐내려 하지만, 하데스의 강한 손길에 속수무책이다.

 

 

'아이네이아스, 안키세스, 아스카니우스'

 

'프로세르피나의 납치'를 보며 감탄할 시간도 없이 다음 방에 또 다른 이야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네이아스, 안키세스, 아스카니우스' 이 세 사람은 로마제국의 대서사시 주인공들이다. 이 조각은 트로이에서 탈출하는 세 사람의 모습을 담아냈다. 트로이 전쟁 후 아이네이아스가 그의 아버지 안키세스와 아들 아스카니우스를 데리고 탈출하는 장면이다. 

베르니니는 대리석으로 만든 세 인물을 통해 한 가족의 고난과 희망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아이네이아스의 근육은 팽팽하게 당겨져 있으며, 그의 표정에는 강인한 의지와 책임감이 보인다. 그는 아버지를 업고 아들을 이끌며,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 안키세스는 주름이 많고 노쇠하고 피곤한 모습이지만, 그의 눈만큼은 지혜와 지난 세월의 흔적이 담겨 있다. 아스카니우스는 어린아이로서의 순수함과 호기심을 보여준다. 눈은 앞으로의 미래를 향해 있으며, 작은 발걸음 하나하나가 새로운 시작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이 조각은 아랫부분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 과거·현재·미래는 이 조각처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아폴론과 다프네'

 

마지막으로 나가기 전 '아폴론과 다프네' 앞에 멈춰 섰다. 눈앞에서 다프네가 변하고 있는 듯했다. 아폴론이 다프네를 쫓는 순간을 포착한 이 조각은 실제로 두 인물이 움직이고 있는 듯한 생동감을 느끼게 했다. 다프네의 몸이 나무로 변하는 과정이 너무도 섬세하게 표현돼, 그 순간의 절박함과 신비로움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다프네의 발끝에서 돋아나는 뿌리와 그녀의 몸이 나무로 변해가는 과정을 매우 섬세하게 표현했다. 손가락이 나뭇가지로 변하는 모습과 나뭇잎으로 덮여가는 머리카락은 다프네의 절망과 공포를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다프네의 몸은 여전히 인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변화의 순간을 생생하게 포착할 수 있다. 아폴론은 다프네를 안으려는 자세

로 서있지만, 다프네가 나무로 변해가는 모습을 슬픈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아폴론의 눈에는 사랑과 절망이 서려 있으며, 그는 그녀를 놓칠 수밖에 없는 운명 앞에서 깊은 슬픔을 느끼는 듯하다. 이 작품은 기술의 절정에 다다른 작품 중 하나이다. 다프네의 피부와 나무껍질의 질감, 아폴론의 근육과 표정은 마치 실제 사람과 나무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조각상을 본 것이 아니라 한 편의 영화를 본 것만 같았다. 베르니니는 대리석이라는 차가운 재료를 사용하여 사람의 감정과 생생한 움직임을 담아냈다. 대리석 속에 숨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의 손길을 거친 대리석은 더 이상 단순한 돌이 아니었다. 하나의 살아 숨 쉬는 생명체였다. 

 

지금 올림포스로 가는 입구가 있다면 
보르게세 미술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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