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드로 공항에서 런던 시내로 향하는 길, 창밖으로 펼쳐지는 새로운 풍경 속 특히 감탄을 부르는 웅장한 외관의 건물이 보이는 순간이 있다. 바로 세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자연사 박물관. 안데르센에서도 청소년 여행이나 키즈 여행으로 런던을 찾을 때면 꼭 빠지지 않고 방문하는 장소이다. 런던 자연사 박물관이 있는 사우스 켄싱턴 지역은 왕세자 부부가 거주하는 켄싱턴 궁전이 있는 곳으로 세계를 주도하는 영국의 어제와 오늘을 보여주는 곳이다. 사우스 켄싱턴 지역에는 세 개의 박물관이 붙어있는데, 자연사 박물관 바로 왼편에는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이 있다. 자연사 박물관 못지않게 크고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는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 이름만 봐서는 어떤 것을 전시하고 있는 곳인지 쉽게 유추하기 어려워 어떤 곳인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세계 최대의 공예와 디자인 미술 박물관,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은 1851년 만국박람회의 대성공 이후 ‘제조업 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설립돼 그 자리를 계속해서 지키고 있다. 지금의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1899년 박물관의 건물을 증축하면서부터다. 세계 최초의 만국박람회를 대성공시키며 영국의 산업과 디자인의 발전에 공헌한 알버트 공의 업적을 기리며 빅토리아 여왕과 알버트 공 부부의 이름을 따 지금의 이름인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의 문은 10시에 열린다.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가보고 싶어하는 박물관 중 하나이기 때문에 오픈 시간 훨씬 전부터 박물관 앞에는 입장 줄이 길게 늘어선다. 마침내 박물관으로 입장하면 높은 층고의 로비와 푸른빛의 화려한 샹들리에 장식이 반겨준다. 박물관은 지하 1층부터 4층까지 구성돼 있다. 세계 최대의 장식 예술 박물관답게 1300년대 중세부터 현대까지 폭넓은 세대를 포괄하고, 서유럽부터 아시아까지 지역도 다양하다. 로비에서 기념품점을 바라보고 오른편에는 아시아권의 예술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그중에는 한국관도 있는데, 유럽의 박물관에서 우리 문화를 마주하며 반가움을 부른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 현대까지 다양한 한국 소장품들이 한국 예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관에서 옆 전시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캐스트 코트가 나오는데,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에서 가장 인상적인 느낌을 줄 수 있는 전시관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캐스트’란 조각이나 건축의 석고 복제품을 의미하며 캐스트 코트에는 유럽 전역의 명작들을 석고로 본뜬 조각들이 전시되고 있다. 들어서자마자 웅장한 조각품들이 분위기를 압도한다. 마치 중세 이탈리아 시기에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캐스트 코트의 중심에는 미켈란젤로의 걸작인 다비드상의 복제품이 위풍당당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트라야누스 기둥 등 거대한 조각품들이 많이 있어 고개를 한껏 들어 넋을 놓고 감상하게 된다.
캐스트 코트에서 감탄하긴 이르다. 아직 절반도 보지 못했다. 캐스트 코트를 벗어나 안쪽으로 이동하면 다양한 조각품들이 전시돼 있다. 조각품 하나하나 감상하다 보면 익숙한 장면들이 눈에 띈다. 판도라, 오이디푸스 등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야기들이 생생하게 조각으로 재현돼 있어 신화 내용을 떠올리며 감상하면 더 재미있게 조각 전시를 볼 수 있다.
이름 있는 고전 작품들도 예술적 영감을 얻는데 충분한 자극을 주지만, 다양한 주제별 전시도 빅토리아 앤 앨버트 박물관의 또 한 가지 매력이 된다. 조각 전시를 감상하다 보면 조금은 다른 분위기의 전시관이 나오는데, 0층의 안쪽에 위치한 패션 전시관이다. 중세부터 현대까지, 시대별 유럽 의복의 흐름을 한눈에 쭉 살펴볼 수 있다. 위층으로 올라가면 2층의 중심부에는 디자인 전시관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의자, 자전거, 라디오 등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것들이 단순하면서도 감각적으로 전시가 되어있다. 산업디자인, 패션디자인 등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거나 예술에 관심 있는 학생들도 충분히 참고하고 즐길만한 전시들이다.
박물관의 3층에는 실버웨어 전시, 4층에는 세라믹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고층으로 갈수록 다양하고 화려한 전시들과 건물 곳곳의 디테일한 인테리어들이 눈에 띈다. 다시 0층으로 돌아가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의 매력을 끝까지 찾아 나선다. 0층 로비의 왼편에는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의 또 하나의 하이라이트가 있는데, 라파엘로의 방이다. 어두운 초록색 배경의 넓은 방에 7점의 커다란 회화가 전시되어 있는데, 어딘가 엄숙하면서도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의 작품은 바티칸 시국과도 연결이 되는데, 시스틴 채플의 태피스트리를 만들기 위한 밑그림들이 바로 이 방에 전시가 되어있다. 라파엘로의 숨결이 담긴 태피스트리는 1623년에 영국 왕실의 공식 소장품이 돼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에 보존되며 영국과 바티칸을 이어주고 있다.
라파엘로의 방까지 감상하고 박물관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0층의 카페에 방문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세계 최초로 박물관 내부에 지어진 카페로 유명하기도 하다. 마치 영국 왕실의 공주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화려한 내부에서 티타임을 가지거나 식사를 할 수 있다. 카페는 중앙에 있는 정원과도 연결돼 있는데, 푸른 연못 앞에 펼쳐진 잔디밭에서 일광욕을 하며 여유를 느끼기 딱 좋은 곳이다. 아쉽게도 겨울에는 날이 춥고 바람이 강하게 불어 거의 개방하지 않았다. 큰 규모의 전시를 관람하느라 다리가 아플 법도 한데, 카페에서 티타임을 가지며 차근차근 감상을 정리해 보는 것도 좋겠다.
과거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영국, 당시 전 세계에서 받은 영향이 여전히 영국 곳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은 시대별, 지역별, 부문별로 예술의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현대 미술, 패션, 팝과 밴드 음악, 영화와 드라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영국인데, 그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 느끼게 해 준다. 예술적 영감을 얻기 위해 런던에 방문한다면,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에서 그 영감을 충분히 충전해 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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