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미술의 황금 삼각지대'의 한 축

월간 안데르센 2024.9월호

by 안데르센 2024. 10. 8. 18:12

본문

 

프라도 미술관에서 보통 걸음으로 15분 정도 걸으면 미술관이 하나 나온다. 스페인 '미술의 황금 삼각지대'의 한 축을 담당하는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이다. 20세기 근대미술을 전시하고 있는 이 미술관은 오늘도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은 건물 그 자체로도 의의가 있다. 1788년부터 1962년까지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의 본래 건물은 종합병원으로 사용됐다. 이후 병원이 쇠퇴하며 사람들의 발걸음을 점차 뜸해졌고, 건물의 존폐가 논란이 일게 된다. 철거와 보존의 갈림길에 섰던 병원은 결국 1977년 문화유산으로 선정되며 마침표를 찍는다. 많은 전문가의 논의 끝에 병원은 미술관으로 재탄생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장 누벨의 도움으로 새 옷도 입었다. 건물의 양 끝에, 눈에 띄는 유리 엘리베이터는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의 아이콘으로도 자리 잡았다.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은 20세기 스페인과 국제 현대 미술의 걸작들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다. 스페인이 자랑하는 파블로 피카소와 살바도르 달리, 호안 미로 등이 한창 작품 활동을 줄기차게 이어가던 시기이다. 그러다 보니 주요 작품들도 위 3명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피카소의 대표작인 <게르니카>는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의 대표 작품 이다. <게르니카>는 1938년 스페인 내전 중 독일군이 스페인 게르니카 지방에 폭격하며 민간인 학살을 다룬 작품이다. 전쟁의 참상을 그만의 독특한 화법으로 구현했는데 그럼에도 인물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건 왜일까. 기하학적으로 분해되고 재구성된 얼굴에도 슬픔은 똑같이 묻어난다. 가장 힘없고 아래에 있는 이들이 전쟁의 탐욕으로 끝없이 희생돼야 한다는 사실은 피카소의 정치 성향에도 많은 영향을 줬다. 

 

 

바르셀로나의 피카소 미술관에 이미 충분히 그의 작품이 많이 전시돼 있어 그런지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에서는 게르니카 외에는 피카소의 흔적을 많이 찾을 수 없다. 대신 살바도르 달리가 우리를 맞이한다. 달리의 작품은 우리를 꿈꾸게 한다. 그의 작품에 주된 소재가 되는 꿈과 무의식은 초현실적인 이미지들을 만들어낸다. 우리의 상상을 고스란히 그림에 옮겨놓은 듯한 그의 그림을 보다 보면 문득 그의 작품에 빠진 우리를 발견하게 된다. 

소피아 미술관은 관람관 안에는 의자가 없다. 복도에나 나가야 앉을 곳들이 눈에 보인다. 미술관들의 관람 방법이 되게 다른 이유는 관람관 안에 의자의 유무가 크게 작용하는데, 의자가 있는 경우는 확실히 보다 많은 이들이 오랜 기간 동안 한자리에 머물러 있는다. 다만 서서도 작품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림과 눈을 맞추고 작가의 생각을 들여다보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 미술관, 박물관을 어떻게 관람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사소한 팁을 하나 주자면, 기본 미술관에 갈 때는 유명한 작품도 작품이지만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적 배경과 화가의 생애를 알고 가면 훨씬 더 도움이 된다. 물론 도슨트의 풍부한 해설을 듣는다면 필요가 없겠지만, 우리에게는 사실 그 너머를 볼 수 있는 예술적 상상력도 필요하기에. 스스로 사고하고 상상하는 힘을 기르는 법을, 예술을 통해 배운다. 

 

 

초현실주의의 또 하나의 거장 호안 미로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추상적이기도 상징적인 화풍을 감상할 수 있다. 앙리 마티스, 마르셀 뒤샹, 후안 그리스 등 이름만 대면 미술계를 들었다 놨다 하는 예술가들의 미술작품이 곳곳에 전시돼 있다. 한국 같았으면 벌써 특별전시전이라고 해서 크게 이름을 붙여놨을 것들이다. 각종 광고에도 도배가 됐을 것이다. 게르니카 진품, 한국 상륙. 벌써 눈에 훤하다. 허나 이들에게는 예술이 일상이다. 내가 보고 싶을 때 피카소의, 달리의 작품을 직접 눈으로 보고 감상할 수 있다. 천재는 만들어진다고도 하는데 이런 풍부한 문화적 환경에서 자라니 피카소와 벨라스케스 등과 같은 여러 거장을 배출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한편으로 스쳐 지나간다.  

프라도 미술관, 티센-보르네미사 미술관과 '미술의 황금 삼각지대'를 형성하고 있는 소피아 레이나 미술관. 스페인 마드리드가 자랑하는 황금 삼각지대, 맞다. 20세기, 한 시대를 풍미한 작품들이 담겨 있다. 거기에 스페인 화가들을 중심으로 한 전시는 배가 아플 정도이다. 마드리드 하면 프라도 미술관이 먼저 생각나는 이들이 많겠지만, 오늘 이후로는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이 눈에 아른거리지 않을까. 언제 한번 마드리드를 방문하게 된다면 꼭 가기를 소망한다.

 

 

ⓒ 2010-2024 안데르센 All Rights Reserved.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