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열의 나라 스페인에 왔다. 한여름에 스페인이라니. 참으로 용기 있는 선택이었다. 한여름의 무더위를 이겨낼만큼 스페인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미술이다. 가히 20세기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는 화가인 파블로 피카소도 바로 스페인 출신이다. 그 외에도 살바도르 달리, 디에고 벨라스케스, 프란시스코 고야 등 스페인을 고향으로 한 화가들이 꽤나 많다. 스페인의 화려한 문화를 기반으로 미술은 뿌리에 뿌리를 넘어 발전해 왔다. 스페인 미술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프라도 미술관이다.
유명한 그림이 많은 프라도 미술관이지만 프라도 미술관을 찾은 건 단 하나의 그림을 보기 위해서였다. 바로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천재로 불린 피카소조차도 그림 연습을 하기 위해 6살 때부터 몇십번의 모방을 했다는 작품, 이후 이를 오마주한 새로운 작품을 창조했다는 바로 그 시원이 되는 작품. 드뷔시와 함께 20세기 초 인상주의의 대표적인 작곡가로 불리는 모리스 라벨이 작품의 주인공을 주제로 곡까지 만들었다는 바로 그 작품 말이다.
내가 <시녀들>을 처음 접한 건 한국의 한 소설을 통해서였다. <심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이름을 날렸던 박민규 작가의 새로운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표지가 바로 <시녀들>이었다. 그때 당시는 시녀들이라는 그림을 알지 못했지만, 그 소설을 통해서 처음으로 그림에 대한 호기심을 가졌다. 평범한 그림이지만 사람을 매혹시킬 줄 아는 그림이었다. 소설은 그림의 주인공이었던 마르가리타 공주가 아닌 공주의 옆에 있는 주걱턱을 가진, 아무도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을 한 왕녀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었다. 작품에 있는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시녀들>을 통해 깨달았다. 그리고 후에 안 사실은 <시녀들>에는 벨라스케스 자신도 들어가 있다는 것. 자화상이 아닌 화가가 자기가 그림을 그리는 그림을 제3자로 묘사해 그리는 일은 그 당시로서나 지금으로서나 꽤나 많은 이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다.
수많은 예술가가 영감을 받았던 <시녀들>이라는 그림 하나만으로도 프라도 미술관을 갈 이유는 충분하다. 오히려 차고 넘친다고 봐도 좋다. 모나리자를 보러 루브르 박물관을 가듯 시녀들 또한 프라도 미술관을 미술관의 대표작으로 뽑힐 수 있다.
유럽에 있는 대부분의 미술관이 그러하듯 유럽의 미술관은 대략 2종류로 나뉜다. 관람하기에 편리한 동선을 가진 미술관과 그러하지 못한 미술관. 편한 미술관과 불편한 미술관. 불편한 미술관도 나름의 매력이 있다. 박물관 내부에서도 길을 잃는 루브르 박물관과 달리 프라도 미술관은 그 정도는 아니다. 다만 내부는 꽤 복잡한 편이니, 미술관을 방문하기 전 꼭 내가 봐야 할 작품들을 선정해 가는 게 좋다.
사진 촬영이 안 되니 좋은 점도 있다. 사진 촬영에만 혈안이 돼 감상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없으니 온전히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다들 조용히 작품에 빠져 감상하는 분위기이다. 유럽에 와서 관람에티켓에 종종 놀란 적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한 작품을 유심히 그리고 뚫어져라 쳐다보는 사람이 많았다는 점이다. 감상 중 쉬어가라고 만든 의자에 앉아 사람들은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작품에 푹 빠져 도통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하기야 아주 어릴 때부터 루브르와 오르세 그리고 프라도 미술관과 피카소 미술관을 적어도 5번 이상은 가본 이들일 터였다. 예술에 조예가 깊지 않은 사람이어도 그들의 삶은 예술과 이미 깊이 연결돼 있었다.
하루 안에 다 보기에는 너무나도 큰 미술관이었다. 프라도 미술관을 온 이유인 <시녀들>로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역시나 사람들이 붐볐다. 작품과 관련한 이전의 내 경험들이 줄지어 지나갔다. 등장인물은 총 11명. 누구 한 명 빠지지 않고 사연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주인공인 그림이다. 벨라스케스가 그리고 있는 사람은 당시 공주였던 마르가리타 공주이지만 막상 그는 그림의 중심에 있지 않다. 관람자를 중심으로 그림의 오른편에 공주가 있고 그를 중심으로 시녀들이 있다. 심지어 <시녀들>로 불리는 이 작품의 제목을 보면 작품의 주인공을 헷갈리기 십상이다. 허나 이 그림은 <시녀들 및 여자 난쟁이와 함께 있는 마르가리타 공주의 초상화>로 적혀 있었고 <시녀들>이라는 제목은 1843년 이후에야 등장한다. 제목과 내용의 복잡한 조화 속에서 우리는 작품의 뒷이야기를 상상하며 흥미로운 관전을 할 수 있다. 이것이 미술의 또 하나의 매력이 아닐까. 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 말이다.
<시녀들>의 바로 옆에는 스페인회화의 3대 거장 중 한 명인 엘 그레코의 그림이 있다. 이탈리아 회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화풍답게 그의 그림은 화려한 색채와 선명한 선이 먼저 눈에 띈다. 특히나 성경의 내용을 많이 담은 그림이기에 각 그림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서는 주요한 성경의 장면들을 필수로 알고 가는 것도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스페인회화의 3대 거장 중 마지막 인물 바로 프란시스코 고야이다. 고야와 벨라스케스는 모두 궁정화가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 당시 왕족들이 좋아할 만한 고상한 화풍이 눈에 띈다. 그가 궁정화가를 그만둔 후로는 주로 일반 민중들을 대상으로 한 그림을 그렸다. 총칼 대신 그림을 통해 민중을 지키려고 노력한 그의 그림을 느낄 수 있다.
프라도 미술관은 단순히 과거의 스페인을 보여주는 곳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예술을 통해 스페인의 혼을 이어가는 장소다. 당신이 꿈꿔온 스페인의 과거와 현재를 경험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프라도 미술관으로 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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