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태어날 때부터 천재였다. 그의 아버지는 예술 교사였고,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렸다. 유명한 일화가 하나 있다. 6살 때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보고 매일 그림을 똑같이 따라 그렸다는 것이다. 그의 재능은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보였고 스페인 내에서 천재적인 미술가로 인정받기 시작한다. 날 때부터 꽃핀 그의 재능은 91살까지 빛을 발한다. 그는 다양한 작품을 남기며 프랑스에서 생을 마친다. 파블로 피카소의 이야기이다.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예술가 중 한 명인 파블로 피카소는 왕성한 작품 활동을 벌였다. 특히나 입체파의 창시자로 불릴 정도로 그는 독창적인 화풍으로 이름을 떨쳤다. 입체파 외에도 그는 고전주의와 초현실주의의 그림을 남기기도 했는데, 그의 생애에 따른 화풍 변화를 볼 수 있는 곳 바로 피카소 미술관이다.
피카소를 알고 싶은 자, 바로 피카소 미술관으로 향하라. 피카소 미술관을 본 나의 한 줄 감상평이다. 그림이 곧 그의 삶이었고 그의 삶은 곧 그림이었던 만큼 그는 그림으로 자신의 인생을 말하고 있었다.
과학과 자비, 1897
천부적인 재능, 그의 재능은 하늘이 주신 선물과 다름이 없었다. 그의 대표작들이 대부분 입체파 작품이기는 하지만 그는 사물을 묘사하는 데에도 탁월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어린 시절 그린 습작들이 여기 피카소 미술관에 남아있다. 특히나 그는 스페인 말라가 지역 미술대회에서 <과학과 자비>라는 작품으로 상을 받는다. 그의 나이 15이었다. 병들어 있는 어머니를 돌보는 의사와 간호사를 묘사한 작품으로 피카소는 큰 주목을 받는다. 그리고 다음 해 그는 스페인 마드리드의 가장 권위 있는 미술학교 중 하나인 “아카데미아 리알”에 입학했다. 아카데미아 리알의 입학 자체가 피카소에게는 중요한 경력 중 하나로 여겨진다. <과학과 자비>를 통해 미술계의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알렸다.
맨틸라를 쓴 여인, 1917
1917년은 그가 입체파 이후 다시 고전적이고 사실주의적인 스타일로 회귀하던 시기이다. 작가를 모르고 본다면 피카소가 한 거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의 화풍이 느껴진다. 재능을 지닌 화가답게 모든 스타일을 다 섭렵할 수 있음을 보인 그는 고전적인 초상화 기법을 사용하며, 매우 사실적이고도 정교하게 인물을 묘사했다. 특히나 이 작품은 그가 스페인의 전통적인 요소를 반영하면서도 인물의 표정과 분위기를 세밀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여성이 머리에 두른 “맨틸라”는 스페인 전통 의상으로, 결혼식이나 종교적인 행사에서 자주 사용되는 레이스 천이다.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등 많은 나라를 오가며 활동한 그이지만 그는 언제나 스페인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그의 예술적 전환기와 스페인에 대한 애정을 볼 수 있다.
시녀들, 1957
프라도 미술관에 있는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오마주한 작품이다. 피카소는 생전 ‘저급한 자는 베끼고, 위대한 자는 훔친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만큼 많은 작품을 베끼며 그의 그림 실력을 늘려갔고, 많은 작품을 오마주하며 그만의 독창적인 화풍을 완성해 간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은 생각나지 않을 만큼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했다. 피카소는 무려 58점에 걸쳐 <시녀들>을 재해석하며 자신만의 스타일로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다시 풀어냈다. 그가 시녀들을 어떻게 표현했는지를 감상해 보자.
그는 그림을 통해 그의 생을 말하고 있었다. 파리에서 정착하며 여러 예술가의 영향을 받았던, 1900년대 초기. 따뜻한 색감으로 그림을 밝게 물들였던 장밋빛 시대를 지나,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구축했던 입체파까지. 이후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전쟁의 참상을 그림으로 나타냈다. 그리하여 그의 대표작 <게르니카>는 혼란의 시기에 탄생하였다. 이후 프랑스로 이주하면서 다양한 실험적 작품을 계속해서 창작한 그는 그림에 그치지 않고 조각, 도예, 판화 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하며 예술 활동을 벌였다. 그의 사생활은 끊임없는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그가 미술계에 일으킨 파장은 무시할 수 없다. 도전과 혁신은 그에게 무한한 성장의 동력을 제공해 줬다. 그의 다양한 작풍과 기법은 보는 사람에게 힘을 선사한다.
한 편에는 그의 첫 번째 페르소나인 페르난데 올리비에를 모델로 한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프랑스의 모델이었다는 그는 피카소가 파리에서 활동하던 시절 만난 연인이었다. 파리 몽마르트, 예술가들이 모인 작업실에서 만난 그들은 홀린 듯 서로를 향한 마음을 발전시켜 나갔다.
입체파 이전 피카소가 여러 예술적 실험을 하던 시기였다. 피카소는 그녀의 얼굴을 반복적으로 그리며 그녀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했다. 2개의 홀이 그녀를 주제로 한 작품으로 꽉 채워질 만큼 그녀는 피카소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피카소와 여성 편력은 떼어놓을 수 없는 키워드이지만, 그의 미술적 재능 역시 무시할 수는 없었다.
피카소를 사랑한다면 바르셀로나의 피카소 미술관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물론 사람들이 알만한 유명한 작품은 없다. 하지만 그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작품을 이만큼 잘 전시한 곳도 드물 듯싶다. 피카소의 생애를 처음 접하는 사람은 적어도 그의 생애 정도는 책이나 유튜브를 통해 보고 가는 걸 추천한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그 말은 조금 알면 보이는 것도 적다는 뜻이다. 그림에 대한 보다 풍부한 감상을 위해서도 그의 삶 정도는 보고 가는 게 좋을 듯싶다. 자연스러운 세계사 공부는 덤이다. 그 역시도 역사의 굴곡을 피해 갈 수 없는 한 인간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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