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별이 쏟아지는 피르미니 성당

월간 안데르센 2025.9월호

by 월간 안데르센 2025. 11. 13. 06:07

본문

 

방공호 같기도 하고, 기념비 같기도 했다. 피르미니 성당을 처음 마주했을 솔직한 인상이다.

성당이라 하면 보통 첨탑이나 장식적인 창문,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이곳에는 그런 요소가 전혀 없다. 눈앞에 놓인 것은 끝이 잘린 거대한 원뿔 모양의 회색 콘크리트 덩어리 하나뿐이었다.

 

조금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생각이 달라졌다. 낮고 평평한 풍경 속에서 유독 하늘을 향해 솟아 있는 모습은 마치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기호처럼 보였다.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르코르뷔지에가 즐겨 사용했던 수평과 수직의 대비를 통해 건축의 본질을 드러내려했던 흔적이 성당에서도 분명히 느껴졌다.

 

피르미니 성당의 본래 이름은  베드로 성당이다.  역사는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피르미니는 탄광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가난에 잠식된 도시였다. 도시를 살리고 싶었던 시장은 세계적인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에게 도시 재생 프로젝트를 의뢰했고, 그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피르미니 베르(Firminy-Vert)’ 단지였다. 그는 주거와 학교, 체육관, 문화시설, 그리고 마지막으로 종교 건축까지 인간의  전반을 아우르는 공간을 설계했다. 그리고  프로젝트의 마침표가 바로  성당이었다.

 

 

 

 

본격적으로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비로소 르코르뷔지에가 건축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려 했는지 조금씩 이해할 있었다. 투박한 콘크리트 벽은 사실 빛을 위한 거대한 캔버스였다. 벽에 뚫린 수많은 작은 구멍 사이로 흘러드는 햇살은 내부를 밤하늘의 별자리처럼 반짝이게 만들었다. 빛은 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직선이 아니라, 작은 구멍들 사이로 스며들며 흩어지는 별빛이었다.

 

르코르뷔지에는 빛을 단순한 조명이 아니라 건축의 주재료로 다루었다. 롱샹 성당에서 두터운 벽과 빛이 만나 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듯, 피르미니 성당에서도 그는 빛을 공간의 중심에 두었다. 전등 하나 켜지지 않았는데도 공간이 이토록 신비롭게 느껴지는 순간, 이미 압도당하고 있었다.

 

특히 동쪽 벽에 새겨진 오리온자리 모양의 구멍들은 성당 안으로 우주의 질서를 끌어들이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대낮인데도 은하수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빛은 공간을 비범하게 만들었다.

 

 

성당 사방의 창은 방향마다 다른 색을 품고 있다. 동쪽은 빨강, 서쪽은 파랑, 남쪽은 초록, 북쪽은 노랑이다. 아침에는 붉은빛, 오후에는 푸른 , 저녁에는 노란빛이 들어와 성당은 하루에도 번씩 표정을 바꾼다. 건축이 완공된 순간에도 여전히 변화를 이어가며, 하나의 살아 있는 공간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제단 앞에 섰을 때는 다른 장면이 기다리고 있었다. 개의 굵은 통로, 이른바 대포 통해 들어온 햇살이 제단을 정면으로 비추고 있었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스포트라이트 같았다. 순간 제단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신성한 무대가 되었고, 건축 전체가 하나의 의식으로 완성되는 듯했다.

 

소리 역시 경험을 완성했다. 벽과 천장이 만들어내는 잔향 덕분에 작은 속삭임조차 10 넘게 울려 퍼진

다고 했다. 안내 직원의 말을 듣고 실제로 마디를 내뱉어보니, 울림은 사람의 목소리를 넘어 공간 자체가 내는 소리처럼 느껴졌다. 르코르뷔지에는 울림을 통해 건축을 거대한 악기로 바꾸어놓은 것이다.

 

인상적인 다른 특징은 성당을걷는 방식이었다. 이곳에서는 입구에서 제단으로 곧장 없다. 반드시 나선형 계단을 따라 천천히 걸어야 한다. 마치 작은 순례길을 걷는 듯한 여정은, 돌고 돌며 벽에 스며드는 빛을 경험하는 과정 자체가 이미 예배의 일부임을 알려준다.

 

 

 

 

화려한 장식이나 거대한 규모 대신, 빛과 소리, 색과 동선 같은 근본적인 요소들을 통해 인간이 스스로를 우주 속에 있다고 자각하게 만드는 건축. 그것이 피르미니 성당의 독보적인 매력이라 있다.

 

아쉽게도 르코르뷔지에는 성당의 완공을 보지 못했다. 1965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공사는 수십 년간 중단되었다. 경제적·행정적 문제로 30 넘게 방치되었지만, 사람들은 끝내 건축을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2006, 그의 마지막 작품은 기적처럼 세상에 나올 있었다.

 

성당을 나오면서 처음 보았던 투박한 콘크리트 덩어리를 다시 떠올렸다. 겉으로는 무심한 회색 건물이었지만, 내부는 별빛과 색채, 울림과 여정으로 가득했다. 건축은 결국 사람을 위한 예술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단순함 속에서 삶과 죽음, 땅과 하늘, 인간과 신의 관계를 사유하게 만든다.

 

르코르뷔지에가 말하고자 했던 새로운 종교 건축의 의미를 정확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질문 자체를 던지고, 지금도 답을 찾아 헤매게 만든다는 점에서 성당은 이미 충분히 특별하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