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를 처음 본 사람들은 대부분 파리가 아름답다고 말한다. 파리를 봤다는 건 정확히 파리의 건물들을 봤다는 것이다. 파리는 다른 도시와 구별되는 건축적 특징을 뚜렷히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파리를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이유다. 파리는 그렇게 보이게끔 계획 건설된 도시다. 건물의 외형을 바라보며 즐기는 것도 충분하지만 그 안의 건축적 요소들을 디테일하게 보면 더욱 재미있는 건축 여행을 할 수 있다.
파리의 대표적 랜드마크인 에펠탑은 전 세계에서 찾아온 관광객들로 항상 붐빈다. 에펠탑 전망 포인트로 유명한 샤이요 궁은 1937년 파리 국제박람회 당시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건축된 기념비적 건물이다. 샤이요 궁에서부터 트로카데로 정원, 이에나 다리, 에펠탑, 샹 드 마르스 공원, 육군사관학교가 모두 일직선상에 놓여있어 이곳에서 보는 경치가 훌륭하다. 자칫 에펠탑 전망만 보고 지나칠 수도 있는 이곳에 파리 건축 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의 메인은 2층이다. 구스타프 에펠부터 르코르뷔지에 장 누벨로 이어지는 건축가들을 중심으로 근대부터의 건축사적 흐름이 모두 정리돼 있다. 재미있게도 첫 번째로 보이는 것은 영국의 건축가 조셉 팩스턴이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에서 철과 유리 목재만으로 모든 구성 부품들을 표준화해 건설한 수정궁의 부분 모형이다. 이 작품 뒤로 에펠탑이 우뚝 서 있는 풍경을 볼 수 있다. 1889년 파리박람회에서 건설한 에펠탑은 철골 부재만을 이용한 트러스 격자구조를 고안해 내며 안정성을 담보했다. 수정궁과 에펠탑 모두 다양한 건축 사조가 뒤엉켜있던 근대시대에 건축 엔지니어링 분야의 혁신을 이끈 성공작으로 평가받는다. 1
이후 현대건축의 시발점인 모더니즘 건축이 등장한다. 1923년 오귀스트 페레가 철근콘크리트의 유연성과 강도를 이용해 고딕건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르랑시 노트르담 성당의 목재 모형과 스테인드글라스 그리고 같은 해에 외젠 프레이시네가 PS 콘크리트 공법으로 건설한 오를리공항 격납고의 거푸집 모형이 전시돼 있는데 둘 다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에게 큰 영감을 준 건축 작품들이다. 2
2층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르코르뷔지에 관이다. 지금까지 주거 용도로 사용하기 때문에 보기 어려운 유니테 다비타시옹의 내부를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복층구조에 양방향으로 뚫린 창, 1층과 2층 한 번에 낸 창, 벽체 대신 칸막이 선반으로 구분된 내부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는 또 다른 프랑스 건축가들의 집합주택의 모형들도 전시돼 있는데, 인구밀도가 높았던 파리에서 주거 공간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들을 설명하고 있다. 관람 순서가 건축사적 흐름으로 가다가 르코르뷔지에관 전에 뜬금없이 프랑스의 도시계획을 전시하는 건축과 사회관이 나오는지 자연스레 알게 된다.
현대 건축관을 지나 로마네스크와 고딕 벽화 관을 보고 나오면 전시가 끝난다. 박물관을 꼼꼼하게 둘러봤다면 앞으로 가야 할 여행지와 거기서 해야 할 것이 명확해진다. 당장 바로 앞 에펠탑에서 트러스 격자구조를 확인해야 하고 노트르담에서 고딕건축의 특징을 찾아야 하며 유니테 다비타시옹에 가서 현대건축의 요소들을 찾아봐야 한다. 알면 알수록 끝없는 디테일함이 건축 여행의 묘미지 않을까?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중 한 명인 미스 반 데어 로어의 ‘신은 디테일에 있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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