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제네바, 프랑스 국경과 맞닿은 조용한 이 지역에는 평범해 보이는 건물들 사이에 인류의 가장 위대한 과학적 실험이 펼쳐지는 장소가 있다. 바로 유럽입자물리연구소, CERN이다. 매년 여름∙겨울방학마다 안데르센 청소년유럽과학기행에 참가한 학생들은 이곳에서 교과서에서만 만났던 물리학의 세계를 직접 체험하며 잊을 수 없는 하루를 보낸다.
CERN 방문자 센터에 들어서면 마치 SF 영화 속 미래 연구소에 들어온 듯한 인상을 받는다. 지하 100미터 깊이에 매설된 지름 27km의 거대한 원형 터널. 이곳에서는 양성자들이 빛의 속도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되어 충돌하고 있다. 발아래 펼쳐진 이 거대한 실험 공간의 존재만으로도 과학의 규모와 깊이를 체감할 수 있다.
센터 내부에는 실제 입자가속기의 모형이 전시돼 있다. 현대적인 전시 공간 곳곳에는 입자물리학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보여주는 자료들이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다. 1954년 12개국으로 시작된 CERN이 현재는 23개 회원국과 70여 개국의 과학자들이 협력하는 국제적인 연구기관으로 성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과학의 힘을 실감할 수 있다.
전시물 중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우주의 탄생 과정을 시각적으로 재구성한 섹션이다. 빅뱅 직후 1조 분의 1초 만에 쿼크들이 양성자와 중성자로 결합하는 장면,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너머에서 시공간이 왜곡되는 현상, 그리고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우주 물질의 85%를 차지하는 암흑물질까지. 이곳에서 발견된 힉스 보손이 어떻게 모든 입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신의 입자'로 불리게 되었는지도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복잡한 물리 법칙들이 아름다운 그래픽과 함께 펼쳐져 마치 우주여행을 하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전시관 한쪽에는 양자역학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 공간이 마련돼 있다. 손을 뻗어 공중의 홀로그램을 만지면 입자들이 파동처럼 퍼져나가고, 관찰자의 시선에 따라 입자의 상태가 바뀌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관찰하기 전까지는 입자가 여러 상태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양자역학의 기본 원리를 몸으로 느끼니 그동안 이해하기 어려웠던 개념이 조금씩 명확해진다. 이러한 양자역학적 성질이 바로 현재 개발 중인 양자컴퓨터와 양자통신 기술의 핵심 원리라는 것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다.
아쉽게도 보안상의 이유로 실제 LHC(대형강입자충돌기)를 직접 볼 수는 없지만, VR 체험을 통해 그 웅장한 모습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다. VR 헤드셋을 쓰고 지하 깊숙한 터널 속으로 들어가면 축구장 크기의 거대한 검출기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가상현실 속에서 양성자 빔이 터널을 따라 돌아가는 모습을 추적하고, 충돌하는 순간 튀어나오는 수많은 입자들의 궤적을 관찰할수 있다. 이때 보게 되는 것은 뮤온, 전자, 포톤 등 기본 입자들의 흔적이다. 과학자들은 이런 데이터를 분석해 우주의 기본 구조를 밝혀내고 있다. 마치 미시세계의 폭죽놀이를 보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우주 탄생의 비밀을 푸는 열쇠를 찾는 과정이다.
CERN 관람의 하이라이트는 초전도체를 주제로 한 라이브 사이언스 쇼다. 연구원이 액체질소로 냉각된 초전도체 위에 자석을 올리면 마치 마법처럼 자석이 공중에 떠오르며 빙글빙글 돌아간다. 전기저항이 완전히 사라진 초전도 상태에서만 일어나는 놀라운 현상을 직접 목격하는 순간이다. 연구원은 LHC의 1,232개 초전도 자석들이 영하 271도로 냉각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온도는 우주 공간보다도 차가운 극한 상황이다. 입자를 빛의 속도의 99.9999991%까지 가속시키기 위해 필요한 엄청난 기술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실험 쇼에서는 초전도체가 활용되는 다양한 분야도 소개된다. 병원의 MRI 장비, 자기 부상열차, 미래의 핵융합 발전소까지. 방금까지 마주한 신기한 과학적 현상이 실제로는 인류의 미래를 바꿀 기술의 핵심이 된다.
CERN에서의 하루는 단순한 견학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인류가 우주의 근본 원리를 밝히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는지, 그리고 과학이 얼마나 흥미진진한 모험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70여 개국 과학자들이 협력하여 인류 공통의 궁금증을 해결해 나가는 모습에서 진정한 과학 정신을 배울 수 있다. CERN이 안데르센 청소년유럽과학기행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선사한 가장 큰 선물은 바로 과학에 대한 꿈과 영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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