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트 모던, 옛 발전소에서 만나는 현대미술
런던 여행자에게 테이트 모던은 단순한 미술관이 아니다. 템스강 남쪽에 자리한 이 건물은 현대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자, 한때 산업시설이었던 장소가 어떻게 공공 건축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유럽에는 궁전이나 전용 미술관 건물에 마련된 미술관이 많은데, 테이트 모던은 전혀 다른 배경에서 시작되었다. 이 건물을 보면 하나의 질문을 해볼 수 았다. “옛 건물을 어떻게 다시 활용할 수 있을까?” 테이트 모던은 런던이라는 도시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 건물은 원래 뱅크사이드 화력 발전소로 쓰이던 곳이다. 1947년부터 1963년까지 단계적으로 지어졌고, 설계자는 런던의 빨간 공중전화박스를 디자인한 것으로도 유명한 길버트 스콧이다. 붉은 벽돌로 된 외벽과 위로 솟은 높은 굴뚝이 이 건물의 특징이다. 한때 산업 시대 런던의 모습을 대표하던 건물이었으나, 1981년 가동이 멈춘 뒤 오랫동안 쓰이지 않았다. 그러다 1990년대 말 테이트 미술관이 현대 미술을 위한 새 공간을 찾던 중, 이 부지가 최종 후보로 떠올랐다. 도심에 있으면서 강가에 인접해 있고, 건물 골조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었던 점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건물을 헐고 새로 짓는 대신 기존 구조를 살리는 방식으로 설계 공모가 진행되었고, 스위스 건축 그룹 헤르조그&드뫼롱이 선정되었다.
건물을 볼때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여전히 남아 있는 큰 굴뚝과 붉은 벽돌 외벽이다. 굴뚝은 더 이상 사용하진 않지만 건물의 중심을 이루고, 좌우로 길게 뻗은 건물 형채가 대칭을 이루고 있다. 외벽을 그대로 남겼기 때문에 이 건물은 도시 속에서도 여전히 과거의 모습을 담은 구조물로 남아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이 건물의 메인인 터빈 홀이 기다리고 있다. 원래는 발전기의 핵심 부품인 터빈이 놓여 있던 공간으로, 높이 35미터, 길이 155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빈 공간이다. 이곳은 전시공간으로 쓰지 않을 때도 그 자체로 인상적인 공간감을 주며, 주로 대형 설치미술 전시를 위한 장소로 쓰인다. 이 공간을 처음 마주한 관람자는 발전소에서 미술관으로 변화된 공간이라는 감각적 인상을 바로 받을 수 있다.
외벽은 기존 발전소의 붉은 벽돌을 그대로 유지했고, 내부에는 새로운 콘크리트 구조물을 넣었다. 그래서 건물 안팎의 디자인이 다르며, 관람 동선에 따라 다양한 분위기를 경험하게 된다. 건물의 지하, 중간층, 위층은 각각 다르게 구성되어 있고, 이 공간들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있다. 2016년에 새로 증축된 블라바트닉 빌딩은 기존 건물과는 전혀 다른 재료와 구조이지만, 외벽은 같은 벽돌 재질을 사용해 시각적으로 어울린다. 이 새 건물은 테이트 모던의 뒤편에서 도시와 강변을 잇는 관람 포인트 역할을 하며 기존 건물과 기능적으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테이트 모던은 기존 건물을 완전히 허물고 새로 지은 것이 아니라, 발전소였을 때의 구조와 공간을 최대한 살리면서 새로운 기능을 더한 사례다. 산업 시설 특유의 반복되는 구조나 큰 규모감은 전시 공간으로 바뀌면서 전혀 다른 감각을 만들어낸다. 건축의 요소 하나하나에서 시간이 지나온 흔적이 느껴지고, 벽돌의 색이나 닳은 자국은 일부러 남긴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건물을 처음부터 다시 짓는 것이 아니라, 기존 조건 위에 새로운 용도를 하나씩 쌓아 올리는 방식은 단순한 리모델링이 아닌 건축가의 건축적 해석의 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헤르조그&드뫼롱의 다른 작업에서도 드러난다. 예를 들어 독일 뒤스부르크에서는 곡물 창고를 미술관으로 바꾼 퀴퍼스뮐레 뮤지엄이 있고, 함부르크에서는 오래된 항만 창고 건물 위에 콘서트홀을 얹은 엘브필하모닉하우스를 설계했다. 이들 모두는 기존 건축이 가진 물리적 형태를 그대로 두면서 전혀 다른 기능을 입힌 전략이다. ‘새로운 건축은 완전히 새롭게 짓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건물을 어떻게 바꾸고 조율하느냐’는 현대 건축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테이트 모던은 도시의 흐름 자체를 바꾼 건축이기도 하다. 런던 중심에서 밀레니엄 브리지를 건너 강 건너편으로 진입하는 이 길 자체가 보행자의 흐름을 새롭게 만들었다. 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 전시를 보고 나서 쉴 수 있는 야외 계단과 테라스, 강 맞은편에 보이는 세인트 폴 대성당과의 시각적 연결은 이 건물이 단순한 실내 전시 공간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과거의 흔적을 없애지 않고 새로운 쓰임을 더했다는 점, 기존 도시 구성 위에서 공공 건축의 가능성을 확장했다는 점에서 테이트 모던은 현대 건축이 도시와 소통하는 한 가지 방식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건축에 관심 있는 여행자의 관점에서 보면, 이 건물은 단지 전시물을 보기 위한 장소가 아니다. 공간을 걷고 멈추며, 예전의 쓰임과 지금의 기능, 그 사이에 놓인 물리적 구조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대상이다. 오래된 구조 위에 새로운 공간을 쌓아 만든 건축 방식이 런던이라는 도시 안에서 어떤 식으로 실현되었는지를 직접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여정이 된다. 테이트 모던은 그런 관찰과 생각을 이끌어내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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